지난여름, 나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한 단편영화 현장의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대학원의 졸업작품이었기에 꽤 큰 현장이었고, 그때 스크립트 슈퍼바이저에 대해 알아보고 매력을 느꼈다. 스크립터라고도 하는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감독, 촬영, 조명, 음향 등 영화의 다양한 역할군 중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스크립터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해 본 결과 잘하는 스크립터는 영화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됐다.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스크립터는 간단히 말해 촬영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역할이다. 감독 바로 옆, 모니터 바로 앞에서 두꺼운 대본과 스크립지를 들고 일하는 사람이다. 간단하게는 컷의 OK/NG 유무만 적는 경우도 있지만 촬영한 카메라의 종류, 렌즈의 종류까지 세세하게 적는 경우도 있다. 촬영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아래서 설명하겠다.
1) 영화의 연속성 확보
큰 현장일수록 같은 씬이더라도 하루 안에 찍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서 씬 1의 첫 번째 컷은 오늘 촬영했는데, 두 번째 컷은 내일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현실에서의 시간을 하루가 지났지만 작품 속의 시간은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뿐이기에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 사이 연속성을 맞춰줘야 한다. 연속성을 맞추지 않으면 두 컷 사이 옷의 색상이 바뀌거나, 배우의 위치, 행동이 한 컷 사이 갑자기 변하며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매 컷이 끝난 후 그 컷에 나오는 인물, 소품, 의상 등을 체크하거나 샷의 구도, 촬영한 카메라/렌즈의 종류까지 기록하기도 한다. (카메라/렌즈의 종류를 기록하는 이유는 카메라/렌즈마다 색감, 왜곡된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2) 편집의 용이성
편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영상과 오디오 클립의 싱크를 맞추는 일이다. 이 작업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선 카메라의 롤 넘버와 오디오 넘버를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수백 개의 클립 중 OK 컷을 선별하는 작업을 간단히 하기 위해 어느 컷이 OK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스크립터는 현장에서 롤 넘버와 오디오 넘버를 기록하고 OK 유무도 기록한다. (때에 따라 NG 사유도 적어놓으면 편집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위 사진은 내가 스크립터로 일할 때 핸드폰의 배경화면으로 설정한 사진이다. 각각의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 주겠다.
1) 프리뷰 핸드폰으로 녹화하기
촬영 현장은 매우 바쁘게 흘러간다. 촬영의 세부사항을 기록하기에 시간이 촉박할 수도 있다. 혹은 아무리 훌륭한 스크립터라도 촬영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엔 힘들 때가 있다. 프리뷰 화면을 녹화해 놓음으로써 놓친 세부사항을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 소품, 분장 확인하기
놓치기 쉬운 것들이다. 특히 메인 소품이 아닌 배경 소품은 놓치기 쉽다. 하지만 이런 것 하나하나가 영화의 몰입도를 깨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작은 것 하나하나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3) 소품 들고 있는 손 체크
앞에선 가방을 왼손에 들고 있었는데 이어지는 장면에선 오른손에 들고 있다면 대참사가 따로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배우가 소품을 어느 손으로 들었는지 한 번쯤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것도 사소하지만 몰입을 크게 깨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4) 대사, 구도, 오디오 등 변경점 기록
기존에 계획된 콘티에서 구도나 대사 등 다양한 것이 현장에서 변경될 수 있다. 후반 작업하는 사람들도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남겨준다면 추후에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다.
5) NG 피드백 기록
이것도 편집의 용이성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NG라고 해도 그 장면을 전혀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가 대사를 틀렸을 경우, 때에 따라 대사를 틀리기 전까지의 상황을 써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NG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입해 놓으면 편집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6) 내가 편집한다 생각하고 기록하기
스크립터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감독이나 조감독도 연속성을 많이 신경 쓰고 후반 작업에도 도움을 주지만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록해 놓는 것은 중요하다. 현장에 나오지 않은 후반작업자들은 이 기록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설명해 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자세하기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크립터에 대해 공부하며 봤던 인상 깊은 말이 있다. 스크립터는 현장 모니터 앞에서 영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다. 하지만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다. 프리프로덕션부터 포스트프로덕션까지 모든 작업에 참여해야 하고, 모든 부서와도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있고 중요한 역할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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